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문화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네트워크,

가난하다고 문화를 모르겠는가.’에서 공연관람을 지원해준 덕분에

4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달밤이라는 연극을 보게 되었다.





공연을 펼친 극단 시지프는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소설에서 다루는 부조리함을 이 극단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 같았다.

달밤은 한국의 소설가 이태준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연극이다.





이태준은 한국의 모파상이라는 별명이 붙은 만큼 완성도 있는 단편 소설을 썼던 소설가이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었으며, 월북하였으나 사상검토를 당하고 과거를 추궁 받았다.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극단에서는 소설가 이태준을 투쟁과 개혁이 아닌 민중에 대한 연민을 지닌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극단이 다루는 이태준의 소설이 자전적 소설인 만큼, 연극은 성인이 된 이태준의 삶 전반을 다룬다.

연극을 통해 소설가로서 그가 추구하는 가치와 역사의 풍파 속에서 느끼는 고통을 엿볼 수 있다.

이 연극은 무엇보다도 덜떨어진사람으로 취급 받는 신문 배달부 황수건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초역할로 다가오겠지만, 나중에는 연극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연극을 많이 보지 않아서 일까?

필자에게 이 연극은 매 순간이 마법 같았고, 그래서인지 여운도 짙게 남은 것 같다.

영화에서는 정해진 시선을 통해 투사된 이미지 상을 바라볼 뿐이라면,

연극에서는 구체적인 공간들을 나의 시선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고

지금 여기에 있는 주인공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연극이라는 매체가 가져다 주는 생동감과 생생함이

달밤이 전달하고자 하는 슬픔을 더 현장감 있게 전달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다.


연극은 끊임없이 부조리를 보여준다. 적어도 초반에는 나름대로의 낭만이 묻어 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한 낭만은 일제의 폭력과 이념의 폭력에 의해 변질되고 사라진다. 연극 초반에는 이태준 본인이 내레이터를 자처하며 관객에게 연극 이야기를 스스로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갖은 폭력에 시달리면서 그는 어깨를 움츠린 노동자, 묵묵히 형벌을 수행하는 시지프가 되어버린다.

그가 부조리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을 그리는 방식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폭력을 받았는지를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저 연극 초반의 장면이 재현될 뿐이다. 그 장면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느꼈던 시골 장면이다. 하지만 시골은 온갖 변질된 소음들로 인해 무너진다. 신파적 요소는 없지만 필자에게는 가장 처절하고 슬픈 장면이었다. 혼란 속에서 이태준은 고통스러워하고 절규하다가 힘을 잃고 북한 간부에게 끌려간다. 그에게는 눈물을 흘릴 여유와 힘이 없었다.

형벌을 받는 시지프가 되었으나, 그는 다시 황수건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 내레이터를 자처하며 뒷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러나 그 뒷이야기는 항상 감초 역할을 했던 황수건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마지막에 이태준이 쓰고 있는 소설의 한 구절로 연극은 끝난다. 그 구절은 황수건을 향한 그의 눈물이었다.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 하였다.’

 어쩌면 이태준은 황수건 만큼은 변하지 않았음을, 아니 변하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황수건은 덜 떨어지고 능력 없는 사람으로 가치평가를 받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쓸쓸히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고 있다. 연극은 현실 세계와 이태준의 세계를 무너뜨렸고, 결국 시종일관 우리를 유쾌하게 만들어준 황수건마저 무너뜨린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 연극이 단순한 비극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의기소침했던 이태준이 기꺼이 쓸쓸한 황수건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물론 황수건에 대한 정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다시 부조리에 대항하여 설움을 알리고자 한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가 쓴 달밤도 결국 시지프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함께 흘리는 눈물이며, 부조리로부터 추동하기 위한 발판인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쓸쓸하게 끝을 맺지만, 그 쓸쓸함과 애달픔은 부조리로부터 일어서기 위한 상처를 마주하는 과정인 것이다.

 정말 좋았다. 원작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아쉬웠던 건, 마지막에 암전이 되고 여운을 감상할 시간도 없이 바로 커튼콜을 위한 조명이 켜졌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운을 더 음미하지 못한 채 어설픈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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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하는 친구 덕분에 불량청년이라는 연극 프레스콜을 보게 되었다!

프레스콜이란, 정식 공연을 하기 전에 기자들을 초대해서 하는 공연을 말한다.

기자 뿐만 아니라 여러 블로거들도 초청받았는데, 그 중 내 친구도 2인 초대를 받아서 나도 함께 갈 수 있었다.


보니깐 제 3회 서울연극인 대상 대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극장 앞에는 연극인들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시간이 애매해서 음료를 시키진 못했다.



연극을 많이 보지 않았던 필자에게 이 연극은 정말 멋졌다.

불량청년은,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한 청년이, 독립투사 김상옥이 활동하는 일제 강점기로 타임워프를 하는 내용의 연극이다.


연출가 분은 나름대로 이 연극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메세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연극은 엄청 유쾌하게 그려지고, 또 감동적으로도 그려진다.



 일제 강점기에서 자신의 목숨을 불사하는 사람들도, 결국 인간 존엄을 위해 투쟁하는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현재 한국 청년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무엇일까?

이육사의 광야를 거듭 낭송하며 강조하는 초인됨의 모습일 것이다.

초인이란, 사회의 체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을 말한다.

생존을 위해 힘겹게 노력하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만 하는 체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상상력일 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그러한 상상력의 좋은 동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연극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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