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 워치는 산불 감시원이 되어 산을 둘러다니며 일을 하는 게임이다.

어드벤처 게임이지만 비주얼 노벨의 느낌도 있다.

이 게임은 정적이고 힐링이 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오직 무전기를 통해 맞은 편 감시원과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하지만 단순히 수다를 떨면서 하이킹을 하는 게임은 아니다.

주인공은 산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 모험을 하게 된다.





게임의 시작은, 주인공 헨리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몽환적인 배경과 서정적인 음악이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황색 텍스트를 클릭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게 된다.





물론 단순히 이야기만을 진행하지 않고, 이야기를 직접 선택할 수도 있다.

아마 선택에 따라 결과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헨리라는 인물에 이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임의 그래픽은 사실적인 질감보다는 애니메이션같은 질감을 가지고 있다.

부드럽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산을 돌아다니면서 변화하는 환경과 날씨를 보는 맛도 있다.





중간 중간에 있는 물품상자를 통해 물품과 전단지, 쪽지를 얻을 수 있고, 지도 경로도 알 수 있게 된다.




주변 환경, 사물들과 입체적으로 조응하지는 않는다. (다만, 소소한 사물들을 집어서 살필 수 있을 뿐이다.)

다양한 지형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낮은 바위나 발판이 있는 특정한 절벽을 오르내리거나, 지지대가 있는 절벽에서 로프를 고정시켜 오르내릴 수 있을 뿐이다.

환경, 사물과의 상호작용은 제작자가 정해준 대로 해야만 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게임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맞은 편 감시대의 주인공과 무전기를 통한 대화를 통해

산을 돌아다니며 '걷는 것', 그리고 주변 환경을 '보는 것'에 집중 시킨다.

우리는 대화를 무시할 수도 있고, 원하는 답변을 선택해서 대화에 함께 할 수도 있다.

결국 이 게임은 상호작용이 가능한 소설이다.

무전기를 통한 대화가 주인공을 돌아다니게 하고, 다양한 사건들을 마주하게 해주며, 그것을 해결하도록 해준다.

이 게임은 모험을 하며 특정한 장면을 마주하는 어드벤처 게임이자 대화로 이끌어지는 비주얼 노벨인 셈이다.





볼륨이 짧다. 금방 엔딩을 볼 수 있는 게임이다.

대화를 나누며 탐험을 하는 방식이 단조로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변의 풍경을 보며 산을 거니는 걸 좋아한다면 이 게임은 괜찮은 게임이 될 것이다.


게임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꽤나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마지막 즈음에는 엄청 몰입하면서 게임을 진행했었다.


게임 스토리도 괜찮았고, 부담없이 즐기기에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숨겨진 엔딩도 있다.





명작으로 평가받는 바이오쇼크1을 내놓았던 바이오쇼크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를 하게 되었다.

기존의 바이오쇼크1이 해저도시를 그렸다면,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공중도시를 그린다.

배경은 1900년대 즈음으로, 미국 우월주의, 신권정치와 자본주의를 엿볼 수 있는 (겉보기에) 유토피아적 세계인 컬럼비아이다.


바이오쇼크1의 해저도시 모습 


인피니트의 공중도시는 시리즈 1의 음침해 보이는 도시에 비해 굉장히 낭만적이고 화사하다.


도시는 굉장히 아름답고 화려하다. 게임을 하면서 정말 많이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던 것 같다.

또 단순히 아름답게만 묘사되지 않고, 공중도시의 사회상을 미학적으로 잘 드러낸다.

도시에 들어서면서 마주하게 되는 종교적인 메시지들, 엄숙하고 웅장한 예술상과, 지도자를 효과적으로 숭배하게 하는 미학적 장치들.

그만큼 매 공간들이 섬세하고 설득력있게 구성되어 있다.

플레이하게 되면 아름다운 것들이 왜곡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들이 보여주는 장관에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가 주로 대립하는 키워드는 인종과 자본주의이다.

유색인종은 죄인으로 취급받고 착취당하며, 심각한 불평등에 의해 노동자들은 삶의 위기에 처해있다.

이에 분노한 유색인종과 노동자들이 봉기하여 권력자에 맞선다.



그러나 이 게임의 주인공인 부커 드윗은 어느 누구의 편에 서지 않는다.

그저 빚을 탕감하려면 여자를 데려와라.’라는 의뢰를 지키기 위해 도시를 누빌 뿐이다.

그러나 게임을 하면서 알게 되는 이 세계와 주인공의 관계는 꽤나 충격적이다.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려주자면, 게임은 단순히 미국 우월주의, 자본주의만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세계에 양자역학을 뒤섞는다.

그럼으로써 조금은 복잡하지만 지적 쾌감을 선사해주면서도, 하나의 독창적인 서사와 이미지를 체험 시켜준다.

 


바이오쇼크 1의 형태를 따라가지만, 전투나 이동의 자유도는 줄어들고 직선적인 플레이가 더 강화되었다.

하지만 여기저기를 날아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또 활기있는 캐릭터를 지닌 엘리자베스와의 협력으로 적어도 외롭지 않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




개인적인 해석 (스포일러가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 이 세계는 부커 드윗의 내면 세계이다. 부커는 콤스톡이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해설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공중 도시는 운디드니(wounded knee) 학살 이후로 세례를 받은 부커 드윗(콤스톡)이 세운 도시이다. (운디드 니란 백인 개척자들에 의해 벌어진 북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사건을 말한다.)

결국 그는 미국 식민지주의, 백인 우월주의, 자본주의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세례를 통해, 부커 드윗은 가해자로서의 드윗(콤스톡)과 피해자로서의 드윗(탐정사무소 드윗)으로 분열된다.

(물론 피해자로서의 드윗이라고 묘사했다고 그의 가해자성을 지우려는 건 아니다.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려 하는 건, 그를 오염시킨 사회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속죄의 의지가 있는 드윗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지나치게 평행우주를 넘나든 콤스톡은 생식능력을 잃고 부커 드윗의 딸을 훔쳐 간다.

경제난에 굴복한 부커 드윗은 뒤늦게 후회하고 딸을 되찾으려 하지만, 실패하게 된다.

여기에서 콤스톡에게 살해당한 루커스 남매는 콤스톡을 없애기 위해 부커 드윗을 콤스톡의 세계로 데려간다. (여기에서 루커스 남매는 공중도시를 가능케 한 장본인이다. 그들의 과학적 동조가 자신의 신격화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콤스톡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 이후 양자단위로 쪼개져 평행우주와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된다.)

혼란스러운 드윗은 기존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공중도시의 존재와 거기에 가야 하는 자신의 이유를 수립한다.

결국 그가 찾는 건 그의 딸이였고, 그가 없애고자 하는 건 가해자로서의 그 자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진정한 속죄가 아니다. 다시 기억을 되찾은 그가 깨달은 건 콤스톡은 변수가 아닌 상수라는 것이다.

즉 그에게는 콤스톡의 가능성, 즉 시대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그가 선택하는 건 피해자로 대표되는 엘리자베스에 의한 죽음이다.


콤스톡이 그의 딸을 가지고 실험을 한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는 자신의 딸을 동등한 주체로 보지 않는 가부장적 존재이다.

오히려 딸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개조하려 하고 훈육하려 한다.

게임에서 보여주는 콤스톡의 모습은 가부장제의 '위대한 아버지'의 모습인 것이다.

애나는 콤스톡의 손에 들어갈 때부터 자신의 인생을 강탈당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굉장히 염세적으로 게임은 끝나지만, 엔딩크레딧이 끝나고 탐정사무소에서 드윗이 애나를 찾는 숨겨진 장면이 나온다.

(게이머의 상상에 엔딩을 맡기겠다는 제작자의 의도가 보인다.)

필자의 입장에서 부커 드윗의 죽음은, 진짜 죽음이 아니라 그의 완전한 속죄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그의 철학, 삶의 양식을 벗어 던지는 행동, 그렇기 때문에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행동으로 귀결된 것이다.

그가 엘리자베스에 의해 익사할 때, 무수한 평행세계의 엘리자베스가 사라진다.

콤스톡의 가능성이 지워지자 콤스톡 세계의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엘리자베스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그는 그의 딸 애나를 키우고 있는 가난한 탐정 부커 드윗으로 돌아가게 된다.

위대한 개척자 가부장적인 백인 미국인을 지워내고,

부조리 속에서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가난한 노동자로서의 드윗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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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



림보의 제작사, playdead에서 2016년에 신작을 내놓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횡스크롤 어드벤쳐이며,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연상케 하는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역시 구체적인 세계관이나 엔딩에 대한 제작사의 설명은 없다.

플레이어들이 스스로 상상해서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걸 유도한 것 같다.



playdead의 첫작품인 림보

 


난이도는 림보보다 더 쉽다. 게임을 진행하는데 더 수월했던 것 같다.

그리고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림보보다 더 다양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으며, 다양한 연출들도 보여주고 있다.

마치 림보가 이 게임의 알파버전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만큼 이 게임은 촘촘하고 완성도가 높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자가 설계해 놓은 게임의 미학적 요소들에 흠뻑 취해 지루할 틈을 느낄 새가 없다.





이 게임은 종적 공간이 존재하는 횡스크롤 게임이다.

플레이를 하다보면 배경을 이루는 움직이는 트럭넓게 펼쳐진 풀밭 등등 다양한 공간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공간을 완전히 돌아다닐 수 없다. 그저 배경 속에서 횡으로 움직일 뿐이다.

그럼에도 종으로 펼쳐진 공간은 게임 연출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횡으로 움직이는 게임과 입체적으로 조응한다.


 



이 게임은 기괴하다.

림보보다는 어느정도 색채가 추가되었으나, 여전히 칙칙하다.

구제역을 연상케하는 돼지들, 돼지에 붙어있는 구더기,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인간 조종장치, 중력을 거스르는 물의 존재, 그 물에 잠겨있는 사람들은 기이한 분위기를 띠며 플레이어로 하여금 끊임없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또한 비일상적이고 독특한 특유의 기괴한 요소들로 이미지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이 게임만의 정체성은 확실해진다.

 




이 게임은 극적이다.

게임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꽤나 원초적이다.

우리는 어떠한 스토리 텔링도 없이, 미장센으로 보여주는 단서들과 주인공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토리를 예측하게 된다.

이 게임은 그러한 원초성을 잘 이용한 모양이다. 필자는 플레이하면서 벅차오름, 공포, 전복의 카타르시스, 연대감을 느꼈다.

단순하지만 적절하게 작곡된 음악은 적절하게 그러한 감정을 잘 유도해주었다.

현악기의 울림, 타악기의 적절한 비트감이 특정 상황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을 극대화 시켜준다.

 




후반부는 꽤나 충격적이었고, 히든엔딩과 그에 대한 해석도 꽤나 인상깊었다.

플레이타임은 짧지만,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반복되는 플레이에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데, 이 게임에서는 그러한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반복보다는 끊임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미장센과 상호작용, 연출 등으로 플레이어를 빠져들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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