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좀비영화 부산행을 영화관에서 보고, 이제서야 유투브로 프리퀄인 서울역을 보게 되었다.

부산행이 상업영화 성격을 띠는 반면 서울역은 연상호 자신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내는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관에서 서울역을 보지 못한 게 괜히 찔리기도 한다.

 

영화 서울역부산행에서 그려지는 좀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





부산행이 어느 정도 대중영화, 오락영화로써의 면모를 지닌다면

서울역은 그러한 색깔은 확 빼고, 감독 자신이 내고 싶은 목소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영화이다.

본인 답기도 한 것이, 그동안 연상호 감독이 찍은 영화들도 서울역과 같은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산행에서는 적어도 희망을 향해 열심히 달려나가는 분투가 있었다면

서울역에서는 희망 따위 짓뭉게버린다.

연상호의 작품을 봐왔던 필자에게는 이게 바로 연상호 스러운 영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하 스포주의

영화에 등장하는 상징들은 꽤 노골적으로 그려진다.

제아무리 보편 복지를 이야기 하는 시민에게도 동등한 주체로 취급받지 못하는 노숙자, 그리고 그 노숙자가 감염된 이유도, 석우(공유)가 작전주로 살린 어느 기업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 (사실 이건 부산행에서 나온다.), 탈출하고자 하는 시민과 물대포로 막아버리는 경찰, 그 뒤로 밀려오는 좀비 떼





이 영화는 좀비라는 속성을 통해, 사회의 으로 여겨지는 것이 어떻게 낮은 계급의 시민으로부터 시작되는지를 보여준다.

부산행의 내용을 참고하면, 은 시민으로부터 형성된 것이 아니라, 기업 내에서 형성되어 시민에게 부여된 것이다.

이는 선박기업 규제 완화 등으로 인해 참사가 벌어진 세월호 사건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형성된 악은 기득권층으로 향하지 않고 시민들로 향해, 같은 시민들을 잡아먹게 한다.

한국 사회 내에 존재하는 갖가지 혐오가 연상된다.

시민들은 이 비극적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의경은 이를 통제하고 막으려 한다.

시위대와 의경의 대립이다.

그리고 뒤에서 밀려오는 좀비들.

결국 시민들의 외침은 반국가적 행위로 몰려 통제받고, 통제받은 시민들은 결국 기득권이 만들어낸 악에 의해 자멸하게 된다.


이 영화가 더 비극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이라는 요소이다.

집에 가야지.’라는 말은, 힘든 상황에서 희망을 갖게 해주는 한마디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돌아갈 집이 없다.’는 말들만 멤돈다.

모델하우스에서 비쳐지는 집은 그림의 떡이다.

오직 기득권층만 살 수 있는 공간그러나 서민들에게는 불가능한

특히 노숙자에게는 열악한 공간조차 소유할 수 없는

그리고 여성에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소비되어버릴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서울역에서의 집은 서민들에게는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일말의 희망도 없는 비극적 영화이다.




 

영화에서 감염된 혜선(심은경)이 포주를 잡아먹는 씬이 그나마 카타르시스를 준다.

상황은 변하지 않지만혜선은 자신을 억압하는 포주(남성)에게 복수하게 된 것이다.

절망 속에서도 부단히 몸부림을 치는 보통의 사람같다.


서울역을 통해 연상호가 그리고자 한 것은 결국기득권에 의해 만들어진 아비규환과, 일말의 희망조차 볼 수 없는 서민들의 세계심지어 그 중에서도 세부적으로 나뉘어지는 권력 계급도거기에서 생존(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혹은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을 위해 끊임없이 벗어나려고 하는 어느 소시민의 몸부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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