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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여러 가지 기발한 각본을 써왔던 찰리 카우프만이 듀크 존슨과 함께 감독으로는 두 번째 작품인 아노말리사를 내놓았다. 아노말리사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중년 남성의 사랑을 다룬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목소리를 녹음한 성우가 총 3명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는 마이클의 목소리, 또 하나는 리사의 목소리, 다른 하나는 그 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애니메이션의 형식 또한 흥미롭다. 캐릭터는 사실적인 질감을 지녔지만, 얼굴에는 조립된 흔적이 있다. 그래서 눈 옆에는 윤곽선이 보인다. (기존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과 차별을 두기 위해 설정했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더 섬세한 감정 묘사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독특한 방식들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한 요소들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요소들은 사랑에 대한 찰리 카우프만의 시선을 담기 위한 장치들이다.

 




2. 영화 분석하기.

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일까?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빌리자면 스톱모션의 효과는 운동의 정지 자체가 시각적인 자극효과를 가지며, 어느 순간의 움직임을 멈추게 함으로써 순간을 해명하거나 강조하는 이용된다. 영화가 작동하는 방식은 시종일관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지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동기는 거기에만 있지는 않아 보인다.

 마이클이 호텔에 체크인을 하러 카운터에 있는 장면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특징이 드러난다. 방을 검색하는 카운터 직원의 손놀림은 분주하지만 그의 얼굴은 마이클을 향해 고정된 채로 멈춰 있다. 종업원은 온화한 표정으로 매번 웃지만, 모습이 어색하게 보여진다. 이러한 위화감은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마스크의 허상을 연상케 한다.

 그밖에도 인물의 섬세한 감정을 담기 위한 이마와 턱의 구분, 구분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 등등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활용되는 지점일 것이다. 부분들은 후술하도록 하고, 우선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집중해보도록 하겠다.

 마이클과 리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들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자기의 고유한 색깔을 지니지 않았다는 느낄 것이다. 그들은 모두 똑같다. 그저 다른 머리와 다른 의상을 했을 뿐이다. 거기에다가 그들은 모두 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말투마저 동일하다. 일률적 얼굴과 목소리는 영화를 건조하게 만든다. 각양각색의 목소리로 어우러진 생동감을 느끼기가 힘들다. 심지어 노래에 나오는 목소리마저 똑같다. 이는 세계에 대한 마이클의 권태를 보여준다. 마이클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답답해 하거나 짜증나 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의 표정은 밝은 적이 없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독특한 이미지들은 마이클과 별개로 설명될  없다. 사실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는 피로하고 주변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마이클의 심리를 반영한 세계이다.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질감이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조립된 흔적들이 보여주는 작위적인 모양새가 괴리감을 형성한다. 괴리감은 존재와 실존 사이의 괴리감이다. 그들은 모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서 실존하지 않는다. 다양한 옷을 입고,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마이클에게는 모두 똑같은 엑스트라인 것이다.

 가장 위화감을 주는 표정을 지닌 호텔 종업원은 마이클과 닮은 구석이 있. 종업원의 미소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마스크를 끼고 언제나 고객에게 웃어야만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종업원은 노동시간과 일상시간 사이의 감정의 괴리를 지닐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마이클은 서비스업을 다루는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의 저자이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마이클이라는 캐릭터를 사람들과 단절된 캐릭터로 묘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면서도 사람들과 단절된 사람인 것이다. 책의 표지에서 보이는 그의 미소와 달리 그는 언제나 침울하다. 호텔에서 그는 서비스를 받지만 호텔은 관계가 단절된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심지어 그가 호텔에 머무는 시간, 도시에 머무는 시간은 하루밖에 없다. 그에게 여유가 없다. 편안한 호텔 룸에 보이는 풍경은 돈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피로인간들의 군집 사회를 연상케 한다.

마이클이 룸서비스를 위해 수화기를 들었을 나오는 세분화된 리모컨 버튼들도 흥미롭게 읽힌다. 분명 고객의 편의를 위해 세분화 되었을 햄버거 버튼, 둥근 요리 접시 버튼, 통닭 버튼, 닭다리 버튼은 오히려 서비스를 받는 마이클에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버튼이 되어버린다. 나은 서비스를 위한 버튼들, 그리고 서비스업 강연을 하면서도 서비스를 받을 그러한 버튼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머뭇거리는 마이클의 모습은, 서비스를 이야기 하는 마이클과 서비스를 받는 마이클 사이의 괴리감을 보여준다.

호텔 룸에서 마이클이 밖을 내다볼 , 오직 어두침침한 건물들만 보인다. 문득 건물 안에 있는 남성이 자위를 하는 장면이 포착된다. 남성은 무엇을 상징할까? 호텔에서 비치는 빌딩은 마이클이 다가가지 못하는 공간이다. 오직 호텔 룸에서 몰래 자위하는 남성을 있다. 남성이 마이클을 쳐다볼 , 그는 커튼 뒤로 숨는다. 그는 남성을 당당하게 없다. 남성이 위치한 공간도 어두컴컴하고 은밀한 공간이다. 공간은 마이클의 내면을 반영한 세계의 무의식의 공간인 것이다. 마이클의 무의식속에 섹스 자리잡고 있다. 이는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랑의 본질과도 연결된다. 자세한 설명은 후술하도록 하겠다.

칙칙한 현실 속에서 타자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그러나 지쳐버린 마이클은 화장실 거울에서 다양한 감정들로 분열된다. 자기 의도와 다르게 마치 경련하는 것처럼 변환하는 그의 표정들은, 마치 마스크에 가려져 억눌려 있다가 긴장이 풀린 순간을 비집고 터져 나오는 것만 같다. 그리고 마이클은 자신의 얼굴을 뜯어내려 한다. (이는 이마와 턱을 분리시킨 새로운 형태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성을 이용한 독특한 효과이다.) 때마침 여성 목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그의 세계에 새로운 누군가가 등장한 것이다.

마이클에게 리사는 거짓 같은 세계에 나타난 여자 주인공이다. 일률적이고 건조한 세계에 균열을 일으킬 그녀가 나타났다. 변칙성으로서의 아노말리사. 그녀는 사실 얼굴에 흉터가 있고 뚱뚱하다. 다시 말해 남성들이 좋아하지 않을흠집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마이클의 구애는, 적어도 그녀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마이클이 그녀를 대하는 방식은 무언가 불편하다. 마이클은 리사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들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 리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면서 목소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하룻밤을 보내려고 한다. 마이클에게 리사는 목소리를 듣기 위한 대상에 불과하다. 목소리는 사랑에 빠지는 느낌이 주는 마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마이클은 오직 자기 자신만의 달콤한 판타지를 꿈꾼다. 그렇기 때문에 아노말리사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자 할 때, 마이클은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그가 권태를 느끼는 시점은 그들이 섹스를 하고 난 다음날이다.

 마지막에 마이클이 아들에게 선물하는 일본 게이샤 인형을 떠올려보자. 그 인형 역시 남들과 다른 여성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목소리는 인형을 산 남성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정액을 받아낸 박제된 여성. 외로운 마이클은 자신의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마법 같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의 사랑의 본질은 아이러니하게도 섹스였다.

 




 마이클은 어떤 존재인가? 그는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그들의 정체를 의심한다. 그는 사람들을 사랑할 모른다. 영화가 중간 중간 보여주는 판타지는, 껍데기를 지닌 그들이 모두 다를 없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마이클도 껍데기를 지닌 존재이다. 하지만 분명 마이클은 다른 외모와 다른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적어도 세계에서 마이클은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럴 수밖에 없다. 세계는 마이클의 심리를 반영한 세계이다.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이 이미 판타지이며, 그것은 마이클의 색안경과 보청기를 투과한 모습이다. 그러니 색안경과 보청기를 주체는 당연히 구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마이클은 이기적 주체로서의 개인인 것이다. 그러나 마이클은 자신의 꿈에서 턱관절을 떨어뜨린다. 이때, 턱관절은 열심히 말을 하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타자와 자신을 구분케 하 껍데기가 분리될 때, 그를 무슨 존재라고 정의할 있을까? 껍데기가 없는 마이클은 남들과 다를 없는, 그저 반응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감독은 모든 인간을 하나의 기계로 전제하고 영화를 진행한 것일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마이클 스스로가 인간을 그러한 존재, 사회에서 마스크를 끼고 관계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화장실 거울에서 다양한 감정들로 균열할 그가 자신의 마스크를 뜯으려 하는 모습에서, 그는 이미 마스크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던 아닐까?

외롭고 지친 마이클은 어떻게 사랑을 하는가? 마이클이 오랜만에 사랑과 만나는 장면에서, 어떤 변화를 느꼈냐고 묻는다. 그가 그녀를 변화시켰냐고 묻는다. 그는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자신을 받아들인 상대방이 어떤 변화를 했는지에 집중한다. 마이클은 사랑에게 자신의 호텔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한다. 이에 화가 그녀는 떠난다. 떠나는 그녀를 향해 마이클은 이해하려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에 집중한다. 그는 아내에게도 정체가 뭐냐고 묻는다. 반면 리사는 시간만에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 강연에서 그녀에게 상처를 마이클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해는 안되지만 받아들일게요.’라는 말을 한다. 마이클은 이해, 답을 찾는 중시하지만, 리사는 그것보다도 자신이 상대방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초점을 둔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3. 나오기.

 리사와의 섹스에서 마이클은 리사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집중한다. 마이클에게 리사 목소리가 없는 섹스는 불가능하다. 섹스가 끝나고 아침이 되자, 젠틀했던 마이클은 리사에게 자신이 불편해 하는 것들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마이클에게 사랑은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여성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만족, 성적인 만족, 지친 자기 삶에 활력을 얻는 만족, 불편함을 주지 않는 만족. 그런 그가 권태의 굴레 속에서 지쳐버리고 세계를 의심한다. 하지만 그는 번도 자신을 의심해보지 않았다.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을 썼던 찰리 카우프만과 듀크 존슨의 사랑 영화이다.

영화가 비상업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투자를 받지 않고, 킥스타터라는 후원 사이트를 통해 제작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성공한 중년 남성의 사랑을 다룬다.

영화가 다루는 시간은 짧다. 그저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공들여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보는 맛이 쏠쏠하다.

또한 찰리 카우프만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을 볼 수 있다.

꽤나 사실적인 질감을 지녔지만 조립의 흔적이 보여서 인공적인 느낌이 드는 캐릭터.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똑같이 들리는 남성 목소리.

중년 남성의 사랑을 특유의 상상력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이 꽤나 흥미롭게 다가갈 것이다.





서비스 업종을 다루는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 작가, 마이클 스톤.

매일 똑같은 남성 목소리들 속에서 살던 마이클은 다음날에 있을 서비스업 강연을 위해 호텔에 투숙하게 된다.

그러던 중, 복도에 있는 다른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 목소리는 남성의 목소리도 아닌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근처 호텔 방에 투숙하는 어느 여성의 것이었다.

그렇게 그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라기보다는 블랙 코미디 영화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상하고 불편한 로맨스와

영화의 설정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판타지 때문이다.

관계에 있어서 고독을 느끼는 남성이 이 영화를 보면 좋을 것 같다.


평론 보러가기 http://baejjangmovie.tistory.com/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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