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한테 이런 강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로를 가게 되었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가 대학로에 있다고 하는데, 처음엔 쉽게 찾지 못했다.



어느 건물 안에, 디비디 방을 지나 한 층 올라가면, 숨겨진 공간이 나오게 된다.



소박하지만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강연도 꽤나 인상깊었지만, 무엇보다도 필자를 설레게 한 건 새로 나온 책에 대한 광고였다.



옆에 있는 책은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산 책이다.

필자가 흥분한 책은 왼쪽에 있는 '여성괴물'이라는 책이었다.

1993년에 바바라 크리드라는 대중문화 페미니스트가 쓴 책인데, 최근에 개정판 번역서로 국내에 출판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공포영화에서 여성이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영화에서 보여주는 귀신들린 여성, 기괴한 자궁, 마녀 등등의 '여성 괴물'에 대한 일관적인 관점을 제시한다고 한다.

에일리언, 엑소시스트, 캐리, 사이코 등등 유명한 영화들이 나오며,

페티시즘 이론적, 정신분석학적,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영화에 대한 전복적인 재독해를 시도한다고 한다.

이 끝내주는 책을, 강연 참여자에게 무려 20%나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길래 잽싸게 질러버렸다.






강연이 끝나고 근처 마로니에 공원을 산책하려 하는데, 마침 공원에서는 (공교롭게도) 페미니즘 문화예술 행사를 하고 있었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각자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타로를 봐주거나,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도 있었고, 스스로 예술작품이 된 사람도 있었다.


두 번째 사진의 '관람 신체'는 관음증적 시선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진의 보라색 리본들은, 사회에서 들리지 않았던 여성의 목소리들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래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넷상에서 돌았던 유명한 문구들은 반짝이펜으로 칠했다고 한다.



다음 사진은, 독일어를 배우고 있는 페미니스트 예술가의 작품들이다.

풍선에는 그녀가 여성으로서 느끼고 있는 경험과 느낌이 적혀있다.

여성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아서, 있는둥 마는둥 한 공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풍선에 메달았다고 한다.

원래는 더 높게 메달아서 사람들이 풍선을 당겨야만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게끔 설치하려 했다고 한다.

정말로 여성이 느끼는 부조리는 쉽게 사회의 중요한 의제가 되질 못한다.

사소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무시되기도 한다.

풍선에 메달린 문구를 다 읽었을 때, 바람으로 인해 순식간에 내 손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사진은, 누워있는 사람 앞을 유리병들로 가려놓은 사진이다.

얼핏 보면, 그 형체가 모호해서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

작가는 이러한 남성성과 여성성의 모호함을 질문하고자 이러한 작품을 내놓았다고 한다.



본의아니게 페미페미한 하루를 보냈다.

영화와 예술을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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