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킬링타임으로 괜찮은 게임이 있다.

손가락 하나만 휘적휘적거려도 즐길 수 있는 슈팅게임이다.




메인화면이다.

손가락으로 스와이프 해서 캐릭터를 움직여서 아이템도 장착하고 캐릭터도 바꿀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서 어떤 선을 넘어가면 게임이 시작된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캐릭터가 움직여야 시간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교한 컨트롤로 적들을 피하고 죽일 수 있다.

물론 한없이 가만히 있으면 뒤에서 세계가 소멸하기 때문에 곧 게임오버가 된다.



몬스터는 다양하다. 닭, 개구리, 펭귄, 헬리콥터, 트럭, 탱크 등등..

옆으로 지나가기도 하고, 캐릭터를 마주보고 오기도 하며, 뒤에서 다가오기도 한다.

주로 검정색인데, 연두색은 죽으면 돈을 떨어뜨리고, 파란색은 죽으면 아이템을 떨어뜨린다.



저 아이템은 게임을 진행하는데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랜덤으로 무기를 장착해주는데, 더 막강하고 많은 적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필수로 먹어야 한다.



가끔씩 보스도 등장한다. 빨강색은 주인공을 계속해서 쫓아온다.

잘 피해서 보스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크기가 큰 만큼, 체력도 많다.


보스 말고도 빨강색 적이 존재한다.

가끔은 이 적들이 멋진 연출을 보여주기도 한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게임머니를 지불해서 아이템을 장착할 수 있다.

게임머니는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현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게임머니로 다양한 캐릭터도 살 수 있다.

캐릭터를 영구히 사용하는 건 아니고, 캐릭터를 쓸 수 있는 횟수를 얻게 된다.

캐릭터별로 다양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캐릭터를 바꾸는 게 유리하다.


물론 현금을 내야 플레이 할 수 있는 캐릭터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캐릭터는 특별 선물로 제공되어 잠깐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캐릭터를 바꿔서 플레이 하는 모습이다.

이 캐릭터는 사방으로 하늘색 총알 두방을 각각 내보낸다.

그밖에도 다양한 효과를 가진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어느 조건을 충족하면, 새로운 캐릭터 박스와 아이템 박스가 열린다.

게임머니를 지불해서 캐릭터를 사고 그 효과를 체험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캐릭터가 죽으면, 시간이 느려지면서 게임 오버 화면으로 전환한다.

캐릭터가 폭발하면서 파편이 튀는 장면은, 죽은 당시의 모습을 멋들어지게 보여준다.


이 게임은 나름대로의 중독성이 있다.

뒤로 갈 수록 더 다양한 적들을 만나게 되고

보라색의 변종 적들은 난이도를 더 어렵게 만든다.

중간중간에 캐릭터를 가로막는 다양한 건물들은 덤이다. (물론 가끔 나오는 파란색 건물은 무척이나 반갑다.)


아이템을 많이 먹을 수록, 더 강하고 많은 적들이 나올 수록,

게임은 치열해지고 통쾌해진다.


킬링타임 용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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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공략]Jusdice (저스다이스)  (2) 2017.06.11

필자가 속해있는 페미니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뒷풀이 (사실상 모임의 연장선이었지만) 장소로 모임 친구가 추천해준 턴테이블 카페에 가게 되었다.

카페 내부는 꽤 아늑했다. 소리 볼륨은 컸지만, 수다 떨기에 방해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카페 내에는 수많은 LP들이 있었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비주얼을 뽐내는 턴테이블과 스피커는 필자를 매료시켰다.



저 주전자에 있는 건 수제 소주다.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좋았고,

또 일반 소주보다 부드러워서 좋았다.


이 카페에서는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술과 안주를 즐길 수도 있으며, 차나 주스를 마실 수도 있었다.

카운터에는 직접 만든 빵과 쿠키를 팔고 있었다.

괜찮은 빵을 추천받고, 직접 만들었다는 라즈베리 잼을 얹어서 먹어보았다.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비싼 디저트를 먹는 기분이었다. 꼭 먹어보길 바란다.



집에 가는 길에 친구가 선물을 주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로저 에버트'라는 미국의 유명한 평론가를 알려주었었다.

이 책은 그 평론가가 쓴 책이었고, 친구는 내 생각이 나서 중고서점에서 샀다고 했다.

너무 갖고 싶었던 책이라 엄청 고마웠다.


목차를 보니 봐야할 영화가 차암 많더라..

그래도, 아직 보지 않은 좋은 영화들이 많다는 건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이 영화는 다미엔 샤젤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그는 이미 첫 작품, ‘위플래쉬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라라랜드역시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과거에 그는 재즈를 했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들에는 재즈가 꽤나 비중있게 등장한다.

 

가족과 함께 라라랜드를 보았다.

사실 친구와 극장에서 본 적도 있었지만, 그땐 지나치게 서사에 집중해서인지 큰 감흥을 느끼진 못했다(어쩌면 당시 컨디션이 안좋았던 것일 수도..)

물론 마지막 부분에서, 예고편이 약간의 스포일러를 해버린 바람에 김이 새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다.

개인적으로 뮤지컬형태로 봤다면 필자는 최고의 공연이라고 했을 것 같다. (본인은 아직 뮤지컬 영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만큼 사랑스러운 영화이다. 아, 물론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뮤지컬 영화이기에 가능하기도 하다.

특히 카메라의 무빙이, 마치 공간의 하나하나를 다 챙겨보려는 뮤지컬 관객의 시선처럼 느껴졌다.





영화가 보여주는 연출, 구성, 색감, 그리고 노래는 관객을 황홀하게 해준다.

이러한 요소들이 꿈과 현실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관객의 감정을 주물러준다.

행복하고, 아련하고, 마법갖고, 쓸쓸하다.

이 영화엔 희로애락이 존재한다.

 




이 영화는 꿈과 현실을 다룬다.

사랑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랑 이야기도 꿈과 현실이라는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영화가 동화적인 냄새만 풍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동화는 너무 황홀하다.

그렇지 않은 부분은 너무 쓸쓸하다.

이 영화는 이루는 것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루는 것에 기뻐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감독은 마법을 부린다.


 



이 영화는 감정의 향연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노래와 춤으로 전달한다.

개인적으로 뮤지컬 라라랜드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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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글 보기 : https://brunch.co.kr/@beajjangmovie/6



*'낙태'라는 단어가 아닌, '임신중절'이라고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낙태'라는 단어가 산모보다 태아중심적으로 사용된 단어로, 자극적인 의미를 이용해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원인을 여성에게 귀속시킬 우려가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개봉한 ‘24라는 영화를 보았다. 보면서 많이 울었고, 임신중절 문제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임신중절을 다룬 다른 영화를 찾아보았고, ‘4개월 3주 그리고 2더 월이라는 영화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필자가 성교육시간에 배웠던 '낙태'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우리가 흔히 학교의 성교육 시간에서 보았던 '낙태' 관련 영상은, 1984년에 제작된 소리없는 비명이라는 영화의 입장과 일치한다.

, ‘태아의 인권은 무시될 수 없다.’는 입장. (필자는 2010년 즈음에 성교육을 받았다.)

소리없는 비명은 보지 않았다. 대신 소리 없는 비명위키피디아 링크를 첨부하도록 하겠다.

거기에 이 영화를 둘러싼 많은 비판들이 있을 것이다.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소리없는 비명_위키피디아https://ko.wikipedia.org/wiki/%EC%86%8C%EB%A6%AC_%EC%97%86%EB%8A%94_%EB%B9%84%EB%AA%85

 

필자가 세 임신중절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 건, 성교육시간에 들어보지 못했던 산모의 이야기였다.

또 임신중절을 대하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

그리고 임신중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었다.

 


24주

24주는 2016년에 독일에 개봉한 영화이다.

독일은 임신중절 합법 국가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보여주는 임신중절에 관한 섬세한 고민과 배려가 엿보였다.

이 영화는 ‘임신중절’이라는 고민은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이 어떤 괴로움에 봉착하는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주인공 아스트리드를 따라서 그 여정에 함께 하게 된다.


이 영화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의 포스터에서 아이가 들어있는 배를 껴안는 아스트리드의 모습이 영화의 성격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 관계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아스트리드는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지 못한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때 아이가 겪어야 할 고통과 그걸 마주해야 하는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본다.

영화에서 그녀가 장애인 아이를 낳는다는 이미지는 극중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다가가기도 하지만,

결국 그녀가 외치는 건, ‘만약 내가 아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이었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

‘4개월 3주 그리고 2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임신중절을 결정한 여성의 친구가 되어 친구의 임신중절을 돕는다.

영화는 롱테이크 기법을 통해 관객이 주인공을 체험하게 한다.

그 체험은 단순히 임신중절에 관한 체험이 아닌, 여러 상황 속에서 불안, 공포, 수치심 등등을 느껴야 하는 여성에 관한 체험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에 처한 상황과, 주인공이 해야만 하는 행동에 숨막힘을 느낄 것이다.


‘24가 감각적인 연출을 보여주며 관객을 울린다면,

‘4개월 3주 그리고 2은 다큐멘터리만큼이나 사실적인 연출로 관객을 힘겹게 한다.

심지어 영화 배경음악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더 월 (If These Walls Could Talk)

더 월 1996년에 개봉한 영화다. 꽤나 아득한 시기인데, 미국사를 참고해보면 그 당시 임신중절에 관한 논란은 뜨거웠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도 엿볼 겸, 전설적인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임신중절을 주제로 1996년에 코미디 공연을 한 영상을 첨부하고자 한다.





더 월’, 영어 제목으로는 ‘if these wall could talk’이라는 영화는

1952, 1970, 1996년의 이야기들을 동일한 단독주택에서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다.

필자가 추론하기로는 wall은 여성을 의미한다.

만약에 벽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이라는 제목은

임신중절이라는 의제를 다룸에 있어서 당사자 여성들이 배제되고 존중받지 못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고 본다.

결국 이 영화는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던 여성의 이야기의 보고인 셈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시대에 따라 다른 임신중절 환경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에서 여성이 임신중절에 대해 갖는 상황과 고민은 공통적으로 현대에 유효했다.

에피소드 1에서 막대한 금액 때문에 열악한 임신중절 시술을 받아야만 하는 주인공의 상황은

임신중절을 불법화하는 한국의 '낙태법'과 어마어마한 시술비를 내야만 하는 한국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특히, 에피소드 2에서 그리는 모습은

임신중절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을 결정함에 있어서 당사자 여성의 의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다가, ‘너무 자극적인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임신중절과 여성운동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영화에서 필자가 보았던 자극적인 연출은, 실제 미국에서도 벌어졌던 일이라고 한다.


결국 이 영화는 단순히 ‘임신중절에 찬성해야 한다.’고 외치기보다는

임신중절이 개개의 상황들과 당사자들의 의사를 고려하는 과정 속에서 존엄한 삶을 지킬 수 있기 위한 가능성으로 존재해야 함을 외친다.

결국 임신중절은 누구도 섣불리 판단하고 금지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들은 임신중절 문제에 있어서 소외되고 수많은 위협과 부담감에 노출되는 여성의 모습이다.

동시에 임신중절은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남성 역시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체로 영화에서 그려지는 남성들은 임신중절을 마주한 여성의 입장보다는 자기 자신의 욕망에 충실히 행동한다. 혹은 적극적으로 문제에 함께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누군가의 삶의 존엄성을 위해 보장되어야 하는 임신중절의 가능성이 아닐까?



인천에서 외박을 하고, '어떻게 오후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다양성영화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공간 주안은 다양한 예술, 독립 영화들을 주로 상영해주는 영화관이다.

인천 주안역 부근에 위치해 있다.

주중에는 6000원으로, 금요일과 주말에는 8000원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심지어 학산네 멤버쉽에 가입하면 금액의 10%를 적립받을 수 있다.





가끔 토요일마다, '사이코 시네마 인천'이라는 행사를 한다.

정신과 원장을 초빙해서 영화를 심리학적으로 독해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오늘 본 '꿈의 제인' 포토 존이 보인다.

앞에는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테이블이 여러 개 있다.

옆에 있는 카운터에서 표를 구매할 수 있다. 


영화는 광고 없이 정시 상영을 하며,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조명을 켜지 않는다.

시네필이라면 꼭 가볼만한 상영관이다.

다만 음향이나 화질이 살짝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극장에서 독립, 예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주 갈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삘 받아서 영화를 연속으로 두 편 보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두 편 다 장난 아니게 슬프고 여운이 진하게 남는 영화였다.

심지어 처음 본 '꿈의 제인'은 인생영화 느낌이 오는 그런 영화였다.

(그리고 '24주' 영화를 보며 펑펑 울었다는..)


하루를 영화와 함께 보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몰아서 보면 영화 하나에 온전하게 몰입하기가 힘들다.

둘 다 너무 인상깊기도 해서, 둘 다 평론글을 써보고 싶다.

하지만 다음에 개별적으로 재감상을 하고 천천히 써야 할 것 같다.


'꿈의 제인'은 가출청소년 소현이 트랜스젠더 제인을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이 사회의 소외 받은 사람들이 살아내는 이야기를 그린다.

몽환적인 음악과 색감이 인상적이다.


꿈'의 제인일까?

감독은 제목의 뜻을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하나는 잠 잘 때의 꿈, 하나는 희망하고자 하는 꿈이다.

왜 두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영화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를 오롯이 감상하고 싶다면 아래의 글들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는 몽환적인, 그러나 어딘가 불안한 모습. 다른 하나는 차갑고 잔인한 모습이다.

영화는 그렇게 두 가지 모습을 낯설게 배치시킨다.

개인적으로 이 낯선 배치가 필자로 하여금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이 영화에서는 제목처럼, 꿈과 현실이 모호하게 그려진다.

감독은 현실과 초현실을 논리적으로 구분하는 것보다는 감정의 흐름과 소현의 욕망에 따라 영화를 보길 바란다고 인터뷰에서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과 초현실의 구분은 꽤나 선명하게 그려진다.

감독은 명확한 구분을 두되 촬영 시 그것에 얽매이지 말자는 양가적인 태도를 가지고 직관적 판단으로 찍고자 했다고 한다.

영화의 논리적인 구성도 중시한 것 같지만,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감상하고 느끼는지를 더 중시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관객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영화는 소외 받는 사람들을 단정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또한 그들이 어떻게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려 하고 그 감정을 존중하며 위로를 건넨다. 그것이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시나리오 작업에 2, 촬영과 후반 작업을 포함해서 개봉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공들여 만든 조현훈 감독의 첫 장편영화, ‘꿈의 제인을 언젠가 꼭 보시길 바란다.

특히 부조리한 삶에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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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학도라면 안 좋은 추억이 있을 수도 있는, 몽타주의 시초이자 명작으로 평가되는 영화, ‘전함 포템킨을 보게 되었다.

진중권의 디지털미디어 미학 강의를 듣다가, ‘전함 포템킨이라는 영화가 예시로 나오길래 호기심에 구매해버렸다.

(따라서 필자는 진중권의 디지털 미디어 미학 강의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인용해서 이 글을 썼다는 것을 명시하겠다.)





이 영화는 소련의 공산주의 선동 영화다.

이념 갈등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으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독재에 의해 고통받는 인민의 연대라는 점에서는 공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전영화인 만큼 지루할 수도 있지만, 지루하다고 하기에는 인상깊은 장면들이 꽤 있는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도 우리에게 긴장감과 벅차오르는 감정을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옛날 한국에서 상영하는 방식처럼, 변사가 영화의 줄거리를 신명나게 읊어주었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이다. 그렇다 보니 중간 중간에 대사들이 텍스트로 나온다.)





 사실 '전함 포템킨'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오늘날의 우리는 몽타주 기법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물론 몽타주 기법을 효과적이지 못하게 쓴 것은 아니다.

영화는 몽타주 기법을 통해 인민 탄압의 참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전함 포템킨이 반격할 때의 쾌감과 그리고 전함들과의 대치 장면에서의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개인적으로 몽타주 기법을 통해 사자상이 일어나는 형태를 표현하는 장면은 꽤나 중의적으로 읽혔다. 분노하는 전함 포템킨의 포효일 수도 있고, 민중의 반란에 놀란 고위층의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역시 오데사 계단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계단을 내려오는 군인, 그들로부터 도망가는 인민, 그 아수라장 속에서 나타나는 특정 인민들의 모습들까지의 장면들은

끊임없이 몽타주 기법으로 제시된다.

대립적 장면들의 충돌로 관객은 그 둘 중 하나에 이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동안의 예술이 구성되는 방식이 인과관계가 뚜렷하고 끊임이 없이 전체성을 이루는 유기적 구성이었다면,

영화는 파편화된 장면들의 끊임없는 충돌로 기존의 예술의 방식을 전복시킨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학자는 이러한 파편화가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 영화가 현실세계로 확장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오늘날의 관객은 몽타주 기법을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말이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선동적 영화는 좋은 영화일까?

필자에게 선동은 영화의 특징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중이 납득할만한 논증이 부재하는 선동은 비판받을 수 있고, 영화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선동은 양면적이다.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라는 영화는,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영화로 평가받는다.

하나 걸리는 점이 있다면, 그 영화가 히틀러를 뛰어나게 미화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파시즘의 공식이기도 하다.

정치를 유미화하는 방식. 전쟁에서 보여주는 미학을 향유하고 나치즘이 가져온 현실을 포장하는 방식은

세계를 위협했던 파시즘의 생각이었다.

선동적 영화가 뛰어난 영화라면, ‘의지의 승리역시 뛰어난 영화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선동이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선동의 존재 여부보다는 다른 측면에서 선동영화를 평가해보고 싶다.

높은 가치로 평가되는 영화는 특정한 특질을 이용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전달하는 데에 있으며,

또한 작품이 드러내는 주제가 대중과 관계맺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의지의 승리는 영화 자체로는 잘 만든 영화이지만,

누군가는 끔찍한 아름다움이라고 이야기하며서 상처를 입을 수도 있는 영화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위대한 승리가 어떤 대중과 관계맺는 방식이며 영화가 저평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가령, 이슬림 테러단체 is를 찬양하는 멋진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보자. 훗날에 영화사적으로 평가받을 지는 몰라도, 현재의 우리들은 결코 영화를 윤리적 관점과 분리시켜 평가하지 못 할 것이다.)

 

물론 '전함 포템킨'이 '의지의 승리'와 차이를 두는 지점이 있다.

파시즘이 정치를 예술화할 때, 공산주의는 예술을 정치화 한다.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몽타주 기법은 파편화를 통해 관객이 영화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영화에 거리를 둠으로써 영화가 제시하는 주제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영화를 통해 이념을 부여한다. 독일의 많은 미학자들도 예술을 통한 정치참여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오늘날 보편화된 몽타주 기법에 의해서 영화에 거리를 두는 대중은 드물다.

이미 대중은 몽타주에 체화된 관객이다.

오히려 어떤 이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거 전함 포템킨이 준 영화사적 전환, 정치적 기여는 그 당시에는 신선하게 다가갈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여는 그 시대에 한해 효과를 발휘한다.

오늘날에는 분명히 그 한계가 존재하며, 변화한 시대상에 따른 새로운 요구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아도

이제 전함 포템킨은 오늘날 대중들에게 독특한 영화로 소비되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분명 존재한다.

영화가 가진 장면의 독창성 또한 존재한다. 또한 배경지식을 알고 영화가 기여한 성취를 찾는 재미도 분명히 존재한다.

(유모차 씬을 염두해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그것에 영향을 받은 다른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새로움을 못 느낄 수도 있겠다.)

때문에 고전영화는 여전히 오늘날에도 향유될 수 있다.

전함 포템킨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전함 포템킨에 담겨있는 영화적 분석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을 이해하고 그것이 보여주는 연출을 감상한다면, 충분히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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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가장 따뜻한 색, 블루  (1) 2017.06.06


오늘 뉴스룸에 봉준호가 나왔다. 역시 예상대로 손석희는 대형 멀티플렉스의 옥자상영 거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봉준호는 그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봉준호는 예술인으로서 영화가 유통되는 과정에 대한 견해보다는 영화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았다.


필자도 처음엔 궁금해 했다. 왜 봉준호는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야만 했을까? 기사를 찾아보니, 봉준호는 배급 문제보다 창작의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는지에 대해 더 집중한 것 같다. 보통 거대자본이 투자될 때엔, 그 투자자의 입김이 분명히 감독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600억원의 금액을 투자했음에도 봉준호에게 전적인 권한을 위임해주었다고 한다. 그만큼 넷플릭스는 봉준호라는 예술인을 존중해준 것이다. 또 봉준호의 발언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거대자본이 들어간 영화에서 투자자의 입김이 무시될 수 없는 세계가 영화계라는 걸 알 수 있다.

 가령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은 마지막 즈음에 나타나는 신파적 장면으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연상호스럽지 않다.’고 비판했고, 필자 역시 블록버스터 대중영화를 만들기 위한 연상호의 타협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서울역이라는 프리퀄을 별도로 만든 건 아닐까?)

 어쨌든, 필자는 넷플릭스라는 투자자가 봉준호라는 감독을 존중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물론 영화가 특정 기업의 영향 아래 탄생한다는 느낌은 썩 유쾌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블록버스터 급의 영화들은 제작사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그저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스트리밍 제작사가 나타났을 뿐이다.

 




넷플릭스 제작의 옥자가 국내 영화시장의 질서를 교란시킬까?

필자는 이미 한국의 영화시장의 질서가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cgv는 독점 개봉이라는 형태로, 오직 자신의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cj 제작 영화가 개봉할 때, 같은 계열사인 cgv는 해당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할 수 있게 해준다. 대표적인 예로, 1000만 영화 명량은 과도한 스크린 독점으로 다른 영화들의 상영 기회를 줄이기도 했다. cj 제작 영화가 개봉하지 않아도, 다양성 영화의 상영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따라서 동네에서 다양성 영화를 보지 못 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부분은 대중이 주로 무엇을 소비하냐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현재 cgv는 돈독이 오른 모양인지 좌석 차등제를 실시하고 있다. 소위 명당 좌석에는 더 높은 가격을 책정기로 한 것이다. 10분동안 광고를 틀어주는 cgv가 아직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대형 멀티플렉스의 거절을 받고도 옥자는 개봉을 할 예정이지만, 오히려 필자는 옥자의 개봉이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낼 거라고 긍정하고 있다. (메가박스, 롯데시네마도 최종적으로 상영하지 않을 때에 한해서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옥자는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에서 개봉하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대한 극장과 같은 여러 다양한 극장에서 개봉을 한다. 그동안 대형 간판에 가려진 극장들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생긴 것이다. 부천에는 반경 1km의 공간에 대형 멀티플렉스가 6곳이나 있고, 강남역 부근에는 7곳이나 있다. 마치 프렌차이즈 편의점이 과하게 들어서면서 슈퍼마켓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꼴이다. 하지만, 유명한 봉준호의 신작이 대형 멀티플렉스를 제외하고 극장에서 개봉한다면, 다양한 극장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봉준호의 말처럼 옥자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극장에서도 볼 수 있다.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될 것이다.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개봉하는 것이, 극장 영화 문화에 영향을 끼칠까? 아니다.

 이미 스트리밍 영화 시청 문화는 이전부터 꾸준히 형성되고 있었다. 이미 우리는 높은 금액을 내지 않고도 핸드폰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지하철, 버스와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스트리밍 방식은 또 하나의 취향일 뿐이다. 특히 바쁜 일과로 여유가 없는 학생, 직장인들에게 스트리밍 서비스는 접근성 또한 높다. 일상에 더 가까워진 형태의 문화소비 형태는 오히려 여유 없는 일상 속에서 잠깐의 틈새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 된다. 따라서 스트리밍 서비스는 기술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 영화관을 즐길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일단 필자 같은 영화광은 영화관을 찾을 것이다. 캄캄한 상영관, 거대한 스크린과 공간을 울리는 스피커는 영화를 감상하기 위한 최고의 조건이다. 오직 영화관에서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여줄 수 없는 영화적 체험을 할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상영관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스피커의 구성, 아이맥스같이 눈을 가득 채우는 스크린의 극대화는 여전히 관객을 영화관으로 유혹한다. 가령 인터스텔라가 개봉할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이맥스관으로 향하지 않았던가? 어떤 영화는 거대한 스크린과 상당한 볼륨의 스피커 없이는 온전히 즐기지 못할 수 있다.

 물론 영화관은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오락 코스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온전히 영화에 몰입하기 위해 극장을 찾지는 않는다. 삶의 여가로서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3d 상영관, 4d 상영관, 자동차 극장과 같은 형태는 영화가 오락의 수단으로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더 제대로 된 몰입을 위해 3d로 봐야 할 영화들도 있기는 하다.) 무엇보다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영화에서 보여주는 광활한 초원이나 우주를 티비나 스마트폰으로 보려고 할까? 영화관보다 스트리밍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스트리밍 서비스 때문이 아니라, 여유 없는 사회적 현실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항상 극장에서만 개봉되어야 할까?

 글쎄..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고, 극장이 아닌 형태로도 개봉할 수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전통이라는 틀에 갇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뉴스룸에서의 봉준호의 말마따나 새로운 흐름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들과의 충분한 소통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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